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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T] 편안한 글쓰기 스터디 #1 싸구려 타임머신

OneTen 2024. 11. 23. 12:50

1주차 주제: 마음이 얽힌 향기

모두들 각자 좋아하는 향기 하나쯤 마음 안에 품고 있지 않나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얽혀있는 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책이 좋다.

 

책을 펼치고, 종이를 넘기며, 손가락 끝으로 글을 따라 읽어 내려가는 행위가 좋다.

 

독서는 내게 몇 안 되는 취미이자, 나를 조금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진귀한 경험이다.

 

 

 

어느 날, 그런 소중한 시간을 조금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겨보고 싶었다.

 

 

 

글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청각을 자극했고,

 

좋아하는 디사론노 리큐르를 마시며 미각을 자극했으며,

 

마침 선물 받았던 오만과 편견 북퍼퓸을 책에 뿌려서 후각을 자극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술을 마셔 정신이 몽롱하지만, 그 덕에 오히려 상상력의 리미트가 느슨해진 느낌.

 

약간의 취기가 돈 상태로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읽었더니 마치 머릿속에 17세기 영국이 펼쳐진 것 같았다.

 

콤프라치코스의 악독한 범죄들에 분노했고, 그윈플렌의 사라지지 않는 미소에 안타까워했다.

 

독자에겐 비극이라는 슬픈 결말에 눈물지었고, 등장인물에겐 희극이라는 완벽한 결말에 환희했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향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억 속에 보관했다.

 

향을 맡을 때면 그 책을 읽던 순간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렇게 이 향수는 내게 타임머신이 되었다.


북 퍼퓸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향기와 더불어 종이의 뽀송함을 해하지 않는 보습제가 들어있는 종이용 향수입니다.

 

저는 종종 아껴서 읽고 싶은 책에는 향수를 뿌려두곤 합니다.

그러면 그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향기와 함께 그 순간이 뇌에 저장됩니다.

 

나중에 다시 그 책을 읽고 싶지만 시간이 없거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향수를 뿌려 책을 읽었던 당시의 감정을 먼저 느껴보곤 합니다.

 

배우 정유미는 해외여행 갈 때마다 도착한 첫 날 향수를 하나씩 사서 여행 내내 그곳에서 산 향수만 뿌린다고 합니다.

그러곤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 그곳에서 뿌린 향수 냄새를 맡으면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향기는 마치 싸구려 타임머신 같습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기능도 없지만,

그 때의 어렴풋한 감정은 되새기게 해줍니다.

 

여러분도 싸구려 타임머신을 통해 순간순간을 마음 속에 저장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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